1982년 함양군청 정문의 입간판은 6월 현충의 달을 맞아 반공과 간첩자수로 쓰여져 있어 당시의 시대상을 읽을수 있다. 정문에 <간첩자수 및 신고강조기간> <낮선사람 살펴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4천만이 감시하여 숨은 간첩 신고하자>로 쓰여져 있어 남북간 대치사황에 의한 민족의 아..
함양초등학교 느티나무 하면 학교 정문 좌측의 천년기념물 느티나무를 생각하는데 이 느티나무는 함양군청 바로 옆에 있다. 지금은 건물에 가리어져 크게 보이지 않으나 이 느티나무의 수형도 이렇게 멋진 나무다. 무엇보다 느티나무 뒤에 보이는 기와집 학교 건물이 지금은 헐어져 없지만 이 학교를 ..
사진자료를 수집하면서 장소와 년도를 기록하지 않았지만 1970년으로 추정되는 사진이다. 지난해 함양지역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강의요청이 있어 이런 사진들로 자료를 만들어 강의 한적이 있는데 그때 깜작 놀랐다. 요즘 아이들이 자기 아버지, 할아버지때의 생활상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데 대해 정말 놀라..
역사는 흐르고 지형은 변하는 가보다. 35년전 이 사진은 상림 다볕당 옆길로 지금의 화장실 근처다. 지금은 모두 철거 되었지만 당시 몇 가구가 모여 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에게 사탕도 파는 구명가게도 있어 사먹던 기역이 난다. 이 길을 지난 많은 사람들은 추억과 애환이 있는 길이겠지만 필..
지금부터 꼭 46년전인 함양읍 상죽마을 어버이날 행사 후 기념촬영한 기록사진이다. 댕기머리에 한복 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은 어머니들과 교복입은 깍아 머리 학생들이 4-H기를 앞에 놓고 촬영한 것으로 보아 마을 4-H회원들이 행사를 주관한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4-H는 농촌학습조직체였지만 4-H정신은..
상림에서 혹정자 나무방향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꼭, 40년전 상림가는 길은 이런 모습 이였다. 좁은 비포장 도로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과 사진 아래 냇물에 아침빨래 나온 아낙네의 모습도 보인다. 무척 서정적인 모습이나 당시 삶은 어렵고 힘들었다. 지금은 베어져 없지만 산목련 가로수..
서상면 도천마을회관 준공식 기록사진이다. 40여년전 사진과 같이 2층 스라브 회관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마을주민의 단결과 행정의 지원으로 당시로 보아 초현대식(?) 회관을 지어 준공식을 가졌으니 마을의 큰 경사였다. 회관 1층에 이발관과 공동구판장까지 있으니 마을 주민의 여론을 형성하고..
사진수집 수첩에 마천면으로 기록 되어 있는데 마을명이 기록되지 않아 아쉽다. 예전에 흔히 볼 수 있는 소로 논가는 모습이지만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 되었다. 그만큼 농업의 기계화가 되었다는 뜻이기 하다. 함양군통계연보에 1980년에 경운기 보급대수가 1,238대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한마을에 5..
꼭 40년전의 농업사진이다. 그 시절에 못자리는 물못자리였는데 비닐이 보급되면서 보온 못자리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묘농사가 반농사라고 좋은 묘를 생산하기 위해 다양한 묘판형태를 보급 했었다. 보온밭못자리, 보온물못자리 등 보급하면서 시행착오와 제대로 방법을 몰라 실패한 묘판에 대해 다시..
산림녹화 정책의 일환으로 제정된 식목일행사 참여 모습이다. 1980년대는 땔감을 나무로 해결했기에 산에 나무가 자랄 시간이 없었다. 그이후 연탄과 가스가 보급되면서 자연스레 산이 우거졌지만 그 때는 민둥산이 였다. 위의 사진은 대봉산 식목일행사 기록사진으로 지금 대봉산에 낙엽송이많이 조림되어 있..
“상전비배관리 중점지도기간”이라는 현수막이 함양읍 시가지에 걸려있다. 누에를 사육하기 위해서는 뽕밭 관리는 필수이기 때문에 행정력을 집중했었다. 그 때 그 시절 논농사외 특별한 농업소득이 없던 시절 누에사육은 중요한 소득원 이였다. 함양군통계연보에 1980년 누에고치 생산량은 춘 · 추잠 합해 ..
버드나물 길이다. 새로 만든 길이라는 뜻으로 “신작로”로 불리기도 한 도로에 가로수로 버드나무를 심어 만든 이 길은 연세 많은 분들에게는 아득한 추억의 길이기도 하다. 뽀얀 먼지 날리며 달리는 버스를 따라가는 어린 학생들과 장바구니 머리에 이고 가는 아낙네들에게 추억과 애환이 스린 길이기도 하..
꼭 40년전의 사진이다. 당시 보리는 없어서는 안될 주요 식량자원으로 한 톨이라도 더 생산하기 위해 증산정책을 추진했었다. 봄에 보리밭이 얼면 보리뿌리가 땅에서 솟아올라 활착이 불량해 수량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보리밟기를 대대적으로 시행했었다. 사진은 4-H회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집..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작물재배는 농업에 큰 변화를 일으킨 획기적 사업 이였다. 요즘은 첨단 시설을 이용한 환경제어시스템과 양액재배로 신선한 농산물을 계절과 기후에 관계없이 생산하고 있지만 40여년전 초기의 비닐하우스는 사진과 같았다. 철제파이프가 아닌 대나무를 이용해 하우스..
객토대회!!별별 대회가 많이 있지만 객토대회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행사장 간판에 쓰인 객토대회 앞과 뒤에 「증 산」이라고 쓰여 있다. 즉, 객토대회는 증산을 위한 대회다. 무슨 증산인가? 주곡인 벼농사를 증산하기 위한 대회다. 객토는 토질을 개량하기 위해 객토원에서 흙을 파..
전화기 옆에부터 있는 손잡이를 돌리면 교환아가씨가 나온다. “여보셔요! 몇 번 부탁합니다.” 하면 아가씨가 코드를 꼽아 연결시키는 전화 교환실이다. 전화기는 자석식 돌리는 전화기에서 다이얼식 교환기로 발전했다가 지금의 전화기와 같이 발전했다. 물론 지금은 개인 휴대폰으로 발전해 위의 사진은 아..
마을회관이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병곡면 휴촌마을 회관에 걸려 있는 표찰은 총 10개로 출입구 정면에 “잘사아보세!” 구호부터 휴촌새마을금고, 휴촌회관, 휴촌부락 민방위대, 멸공자위새마을, 간첩식고센터, 병곡단위농업협동조합 휴촌동회, 휴촌4-H구락부회관, 휴촌마을1조금고 그리고 순찰..
40년전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들께서는 이렇게 공부를 했다. 3월 따뜻한 봄날에 마을회관 마루에 걸터앉아 새로운 농업기술을 배우기 위해 지도소(농업기술센터)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영농교육을 받는 모습이다. 지금은 프리젠테이션으로 다양한 그림을 그려 보여 주지만 그 때는 차트를 만들어 영농교육을 했었다...
27년 전의 함양장날 모습이다. 11월 정도로 추정되는 이 사진은 가을걷이를 마치고 수확한 콩이며, 팥, 조등 각종농산물을 가지고 시장에 나온 함양장날의 기록사진이다. 한복입은 할아버지께서 뭔가를 사시려고 값을 흥정하시고, 그 당시 갓 나오기 시작한 PP포대에 이것저것 담아 나온 농산물을 펼쳐놓고 이..
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께서 신년 년두회견에서『소가 밭을가는 오늘의 현실을 아득한 전설이 되게합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오늘 그때 대통령께서 간절히 바라던 소가 밭을 가는 모습이 전설이 되었다. 왜 대통령까지 나서서 신년 년두회견에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그 때는 그만큼..